유교적 사상과 전통아래에서 자라온 우리와 부모님의 세대들은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왠만하면 요란을 떨지 않고 견디는 것을 미덕으로 배웠습니다. 한국이나 미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와 문화권에서도 자기 주장보다는 타인을 배려하며 존중하는 것이 좋은사람의 심볼처럼 여겨지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마음속에 이런 사회적인 심리가 공통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얼마나 큰 위험을 주고 또 나와 내 주위에 공동체적 피해를 줄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회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는 다른사람들이 먼저 의도적으로 틀린대답을 하도록 하여, 실험대상자 또한 알면서도 틀린 대답을 선택하게 하는 집단 압력의 힘을 실험을 통해 증명해 보였습니다. 현대 심리학자들 또한 이런 사회적 압력을 통해 전체 군중의 의견과 생각마저 얼마나 쉽게 조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냅니다.

재미삼아 하는 내기니까 불편하지만 그냥 웃으며 따라가는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데도 모두 지나치니까 나역시 외면하는 사람, 거짓인 것을 알면서도 아무도 도전하지 않기에 그냥 모른척 하는 사람, 단순히 다른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모두가 괜찮다고 하니까 그렇게 자신을 설득하는 사람, 좋은게 좋은거라고 하면서 모두가 탄 배를 결코 흔들지 않는 사람, 물결을 거스러 올라가기에는 개인적으로 감수해야 할 위험이 크다고 생각하여, 알면서도 침묵하는 사람, 입만 다물고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고 스스로 마음의 소리를 닫아버리고 안정권에 머무르는 사람… 우리는 어떤 사람인가요?

다른이의 인정이나 칭찬받는것을 얼만큼 좋아하는지 한번쯤은 자신에게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누구를 화나게 하는 것이 가장 두려운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옳다고 믿는 것을 추구하기 보다 얌전하게 앉아있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얼마나 큰 위험과 공동체나 사회적 피해를 줄 수 있는지도 고려해보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이 영역에서 어깨 펼만큼 떳떳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이 들때, 조용히 일어나서 우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착해보이는 행동을 추구하는 배경엔 어떤 동기가 숨어있는지 정직하게 자신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대항하고 피 흘려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옳은 일인 것인지, 아니면 위험 감수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그냥 따라가는 것인지, 이것이 내가 할 수있는 최선의 길인지, 아니면 누구를 실망시키고 싶지않아서 알면서도 움추리는 것인지, 가끔씩은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대중적이고 착해보이는 잘못된 선택을 조심해야 할 이유는 나쁘지 않아보이는 그 선택이 결국 우리를 무책임한 방관자 또는 침묵하는 공범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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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 기쁜소리방송 (AM 1310) 에 방송되는 라디오 칼럼 내용입니다. 매주 월요일 오전 7:50분과 오후 12:25분에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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